살아남기 위한 선택
두 번째 창업은 철저히 캐시카우를 만들기 위해 시작되었다. 첫 번째 사업을 정리하며 우리 팀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일단 돈부터 벌어보자.”
좋아하는 일을 찾겠다는 목표도, 시장을 바꾸겠다는 이상도 잠시 내려놓았다. 생존이 먼저였다. 그렇게 팀원들 모두는 빠르게 수익을 만들 수 있는 사업을 찾기 시작했다.
여러 아이디어가 나왔지만 우리가 선택한 것은 온라인 과일 판매였다. 당시 코로나19 시기였고 온라인 소비는 빠르게 늘어나고 있었다. 과일은 꾸준한 수요가 있는 시장이었고, 무엇보다 대기업이 장악하지 않은 영역이라는 점이 매력적으로 보였다.
첫 번째 창업이 기술과 이상에 걸어보았다면, 두 번째 창업은 철저히 돈이 되는 현실적인 구조를 만드는 데 집중했다.
우리는 ‘농장찾기’라는 네이버 스마트스토어를 만들었다. “도매시장의 부조리를 없애고 농장과 소비자를 직접 연결한다”는 메시지를 내세웠다.
발로 뛰며 배운 영업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공급 농장을 확보하는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도 참 무식한 방법이었다. 우리가 판매하고 싶은 과일 농장의 연락처를 수천 건 수집했고, 하루 종일 전화를 돌렸다. 농장주가 시간을 내준다면 차를 몰고 직접 찾아갔다. 전국의 농장을 100곳 가까이 방문했던 것 같다.
처음에는 경계하시던 농장주분들도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계약에 응해주셨다. 공급 계약을 따내는 것 자체는 생각보다 어렵지 않았다.
하지만 하루에 한 곳, 많아야 두 곳을 방문하고 나면 하루가 금세 지나갔다. 컴퓨터 앞에 앉아 개발만 하던 내가 공급사를 발굴하고 거래처를 늘리는 일을 한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했다.
그렇게 공급망을 확보한 뒤 본격적으로 판매를 시작했다. 하지만 쇼핑몰을 만든다고 고객이 저절로 찾아오는 것은 아니었다. 우리는 농산물 관련 커뮤니티에 홍보 글을 꾸준히 올렸고, 당시 전국 광고가 가능했던 당근마켓도 적극 활용했다.
첫 주문의 기쁨과 첫 컴플레인
반응은 생각보다 좋았다.
주문이 들어오면 농장에 연락해 상품을 발송했다. 처음 주문이 들어왔을 때의 짜릿함은 지금도 기억난다. 내가 만든 서비스가 아닌, 내가 판매한 상품을 누군가 돈을 내고 구매했다는 사실이 꽤 신선하게 다가왔다.
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예상치 못한 문제가 터졌다. 바로 고객 불만이었다.
어느 날 처음으로 항의 전화를 받았다. 고객은 매우 화가 나 있었다. 과일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부터 맛이 없다는 이야기까지, 불만은 다양했다. 30분 넘게 전화를 붙들고 고객의 이야기를 들어야 했다. 결국 환불을 진행해드렸다.
문제는 한 번이 아니었다. 비슷한 불만이 반복되기 시작했다. 과일을 팔수록 스트레스는 늘어갔고 수익보다 손해가 커졌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을까. 농장을 방문했을 때 먹었던 과일은 분명 맛있었다. 상태도 훌륭했다. 그런데 소비자들은 왜 계속 불만을 제기하는 걸까.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 나는 직접 소비자가 되어 우리 쇼핑몰에서 과일을 주문해 보았다.
그리고 곧 알게 되었다. 내가 받은 과일은 농장에서 시식했던 과일과 전혀 다른 품질이었다.
이후 여러 농장을 조사하며 시장의 구조를 이해하게 되었다. 대부분의 농장은 이미 주요 거래처를 가지고 있었다. 도매시장이나 대형마트 같은 곳이다. 농장 입장에서 가장 중요한 고객은 안정적으로 대량 구매를 해주는 이들이었다. 당연히 가장 좋은 품질의 과일은 먼저 그곳으로 출하된다. 그리고 남은 물량이 우리 같은 작은 온라인 판매업체로 흘러들어왔다.
즉, 우리가 농장을 방문했을 때 대접받았던 과일은 최고 등급의 상품이었지만, 실제 소비자에게 배송되는 과일은 그렇지 않은 경우가 많았다.
모든 농장이 그랬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반복되는 고객 불만을 겪으며 나 역시 큰 배신감을 느꼈다. 시장 구조상 이해할 수는 있었다. 농장 입장에서 작은 쇼핑몰보다 기존 거래처가 훨씬 중요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마음 한편은 허탈했다. 결국 나는 하나둘씩 해당 농장들과의 계약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사실상 농장 직거래라는 목표는 포기한 순간이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돌아갔다.
이번에는 경험 있는 사람에게 배우기로 했다. 대전에서 오랫동안 과일 사업을 해온 분들을 수소문했고, 감사하게도 '통통과일'이라는 브랜드를 운영하고 계신 김성진 사장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분은 도매시장부터 시작해 여러 과일 매장을 운영하고 계신 분이었다.
나는 새벽마다 그분을 따라 청과물 도매시장에 나갔다. 그곳에서 경매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어떤 과일이 좋은 상품인지, 과일은 어떻게 맛보고 선별하는지 하나하나 배울 수 있었다. 그 후 우리는 직접 검수한 상품만 선별해 포장하고 판매하기 시작했다. 도매시장에서 오랜 시간 신뢰를 쌓아온 농장들은 그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상당한 노력을 기울이고 있었다. 덕분에 공급 품질에 대한 문제도 크게 줄어들었다.
결과는 기대 이상이었다. 처음으로 별점 5점 리뷰가 꾸준히 쌓이기 시작했고, 단골 고객도 생겨났다.
그렇게 몇몇 상품은 목표했던 네이버 키워드 검색 결과 상위권에 오를 수 있었다. 그리고 한 해 매출은 약 1억 원 정도를 기록했다. 처음 창업했을 때를 생각하면 분명 의미 있는 성과였다.
팀이 무너지기 시작하다
하지만 현실은 여전히 녹록지 않았다.
매입 비용과 각종 운영비를 제외하면 세 사람이 나누기에 충분한 수익은 아니었다. 솔직히 말하면 모두가 회사에 취업했다면 훨씬 많은 돈을 벌 수 있었다. 게다가 새벽마다 시장에 나가고 고객 응대를 하며 버티는 일도 점점 힘들어졌다. 어느 날 한 팀원이 나에게 물었다.
“우리 이거 계속 해야 할까?”
나 역시 답을 알고 있지 못했다. 지쳐 있었고, 더 좋은 아이디어도 떠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해서는 안 될 무심한 말을 했다.
“더 좋은 길이 있으면 가도 된다. 나도 지금은 답이 없다.”
아니나 다를까 결국 다음 해부터 팀원들은 하나둘씩 취업하여 떠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담담한 척 헤어졌지만 마음 한편에는 상처가 남았다. 돈을 벌기 위해 시작한 사업은 어느 정도 성과를 냈지만, 우리가 오래 함께할 이유를 만들어주지는 못했다.
돌이켜보면 부족했던 것은 돈이 아니었다. 함께 가야 할 이유였다. 팀은 비전을 잃었고, 나는 그것을 다시 세우지 못했다.
그렇게 창업 2년 차가 끝날 2022년 중반 무렵, 나는 쇼핑몰만 남긴 채 혼자가 되었다. 그리고 이 사업을 계속해야 할 이유도 함께 사라졌다. 그때부터 나는 내가 정말 사업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진지하게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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